2007년 8월 20일 월요일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전범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전범이다.

두 명의 인질이 풀려났다.

모 두들 일단 한숨을 돌린다. 남아있는 19명 역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는 ‘협상’ 중이다. 이 와중에 ‘회담’이 성사됐다. 꿈에 그리던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이다. 이제 ‘통일’인가. 비로소 ‘평화’인가. 당신들의 한반도에...

대한민국은 전쟁중

나 는 2년전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을 ‘전범’으로 기소했다. 2005년 6월 개최된 ‘이라크 국제전범재판운동’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통령 노무현을, 이라크 침략전쟁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전범’재판에 회부한 것이다. 나는 전범국가의 국민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이라크 파병을 ‘한미동맹’이라 부르짖고, 나는 ‘침략동맹’ ‘학살동맹’이라고 외쳤다. 그 전범 노무현이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했다. ‘경제공동체’ 구상도 발표했다. 얼씨구나 환영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19명의 사람은 아프간에 그대로 있다. 200여명의 다산·동의부대 군인들과 1200여명의 자이툰부대원들이 거기, 아프간에 이라크에 그대로 있다. 그 침략의 한 복판에 그/녀들은 서있다.

1953 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항구적 평화체제로 새롭게 구축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이 와중에, 대한민국은 한반도가 아닌 저 멀리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전쟁중이다. 그것도 침략군으로서 말이다. 우리는 전쟁중인 국가에 살고 있다. 진저리나게도 벌써 4년째다.

누구를 위하여 ‘협상’은 열리나

피 랍사건이 이미 신문 톱기사에서 내려간지 오래다. 그 자리를 ‘정상회담’이 차지했다. 이번 피랍사건의 원인을 두고 사실상 ‘점령’과 ‘파병’은 일부 운동권의 ‘반미좌판’으로 매도당하거나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 두 주 동안 수원역 광장에서 진행한 ‘무사귀환, 즉각철군’ 촛불집회에서 역시 시민들의 싸늘한 반응을 수차례 경험하기도 했다. ‘점령과 파병’은 간데없고 ‘협상’과 ‘종교적 비난’만이 남았다.

남 아있는 19명의 목숨을 위해 정부는 ‘최선을 다해’ 탈레반과 ‘접촉’하고 있단다. 좋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면 ‘접촉’을 하던 ‘협상’을 하던 상관없다. 19명, ‘살아만 돌아와다오’가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라면 인정하고 싶다. 허나, 그게 전부가 아닌걸, 우리는 수차례 경험하지 않았는가. 김선일씨부터 말이다.

이 무대책이 대책이라고 우겨대는 노무현 정부에게 도대체 무어라 요구할 것인가. 단지 19명의 목숨을 살리는 일에 충실하라고, 단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의 목숨을 위해 진지한 ‘접촉’을 계속 해보라고, 그래 두 명 살았으니 잘 되고 있다고 어깨라도 두드려야 할텐가.

남 아있는 19명의 생명이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노무현 정권은 이미 전쟁범죄자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에서 희생된 셀 수조차 없는 그 생명들에 대하여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정부는 그 흔한 ‘유감’ 조차 표명한 적이 없다. 젠장.

철군없는 한반도 평화, 과연

‘남 북정상회담’이라는 역사적 시간앞에서 나는 ‘평화’의 의미를 다시 고민한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연말 철군일정을 잡아놓고 있다는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군에 대해서는 아직도 구체적인 철군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이 시간 앞에서 나는 ‘평화’를 다시 의심한다.

광 장에서 드는 촛불의 무게는 종이컵과 타들어가는 양초의 무게가 아니라 ‘침략’앞에 ‘전쟁’앞에 고스란히 드러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민중들의 생명의 무게로 다가온다. ‘한반도’의 평화가 ‘아프간’의 평화로, ‘이라크’의 평화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지만, 우리들의 의식은 ‘한반도’에 갖혀있다.

‘남북정상회담’ 잘 되면 좋겠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전범이다.

____ 행동연대 웹소식지 20호

2007년 8월 18일 토요일

남겨진...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군가에 땀을 닦아 주었던,
누군가에 눈물을 닦아 주었던,
이렇게 남겨진 향기 하나...

2008. 8. 18. 분당중앙공원

2007년 8월 14일 화요일

마음

물기 한가득 머금고 있는 듯한 공기는
몸도 마음도 축축하게 적신다.

그래도 오늘 하루.
잘 지낼 수 있을꺼야.
그럴꺼야.

2007년 8월 13일 월요일

[펌] 평화와 자유의 생태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 화염에 휩싸이다

포크레인과 무장한 전투경찰이 등장하자 크리스티아니아 공동체 자율기구는 공동체 방어를 위한 무장과 투쟁을 결정하고, 바리케이트를 쌓고 공권력에 맞섰습니다.
 2007년 6월 15일 저녁 최루탄과 방패, 곤봉, 포크래인으로 무장한 수많은 전투경찰이 마을의 통나무집을 철거하기 위해서 진격해 들어왔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밤새 격렬히 싸웠습니다.
60명이 구속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이제 평화와 자유의 생태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 공동체는 하나의 저항의 거점이 되었으며, 거대한 화염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저항은 계속되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은 이 저항 속에서 정부가 약속하는 공공아파트가 아니라 대안적인 또 다른 삶의 방식인 자신의 공동체를 지켜내야 한다고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원문은 아래링크...
http://www.koreagreens.org/news/articleView.html?idxno=454

바보

삶이 복잡하게 느껴지는건
무심해지지 않아서.

답은 간단하다.
문제는 그걸 선택하느냐 안하느냐
하지만 난 언제나
거기서 갈등한다.

답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는 걸.
방금 깨달았다.
바보.

구겨진 미래, 조작된 희망

내일은 오늘과 다를꺼라고,
10년뒤면 우리의 삶이 조금 더 편해지고, 살기 좋을꺼라고
늘 꿈꾸면서 산다.

아이들에게 '너희는 꿈이 뭐니?'하고 물으면
솔재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소방차" "구급차"
소방관도 아니고 의사도 아니고...자동차가 되고 싶단다.

우리에게 '희망'을 꿈꾸면서 산다는게 얼마나 참으로 얼마나 허황된 '꿈'인지
언제나 비극적이지만 언제나 잘 될꺼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거겠지.

동전의 양면. 절망과 희망.
그러나 꿈조차 꾸지 않으면,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
인간은 그래서 언제나 나약하다.

희망은 '욕심'이 아니다.
미래는 '소유'가 아니다.
꿈은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다.

구겨진 현실은 과거를 반영하고 현실은 미래를 결정한다.
'조작된' 희망은 '욕심'과 '소유'로 미래를 구겨놓는다.
우리는 '꿈'을 버려야 한다. 조작된 희망을 버려야 산다.
그렇게 살고 싶지만, 나는 인간이다. 똑같은 인간.

솔재의 꿈은 소방차다.
그게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