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9일 목요일

손에 쥔 ‘화염병’은 마지막 남은 ‘희망’이자 세상을 향한 ‘절규’

사진 : 박김형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을까. 이 생각만 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나이 칠십에 화염병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야만 했던 그 쓰라린 현실을 외면한 이 세상이 두렵습니다. 살인진압의 책임에 대해 ‘정당한 법집행’ 운운하는 도저히 인간의 언어로 해석할 수 없는 그 잔인함에 인간이길 포기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 먹먹한 가슴 한켠을 쓸어내리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허름한 연립주택 옥상에 세워진 망루. 그 위에 마스크를 쓴 철거민들. 그들 손으로 쥐고 있던 화염병. 그 모습은 용산의 모습이 아니라 4년 전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철거지역의 모습입니다.

2005년 6월 8일. 초여름 더위에 사무실에서 지쳐갈 쯤 한통의 문자가 도착합니다. ‘오산 수청동 철거민 망루 침탈 위기’. 문자를 받자마자 솔직히 내키지 않은 걸음을 오산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50일이 넘게 망루농성을 하던 오산 수청동 철거민들의 소식을 계속 접하고 있었고, 하지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이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시각. KBS, MBC의 현장중계 차량이 보이고, 이미 경찰병력으로 둘러쌓여 현장접근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기억으로는 철거민들의 과격불법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본보기로 경찰특공대를 투입하고 언론과 방송사까지 총동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진압은 시작됐습니다. 최루가스와 고무총으로 중무장한 경찰특공대와 그 병력을 실은 컨테이너 박스가 철거민들이 쌓아 놓은 망루로 올려졌습니다. 테러진압부대인 경찰특공대의 진압은 과격 테러분자들 진압하는 방식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습니다. 현장에 접근하지 못한 일부의 사람들은 ‘살인진압 중단하라’는 들리지도 않는 구호를 외쳐볼 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수청동 철거민들은 끌려 내려 왔습니다. 철거용역직원들의 살인에 가까운 폭력에 시달리다, 마지막 선택인 망루농성은 그렇게 경찰특공대에 의해 진압됐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본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괴감과 이 사회의 변하지 않는 황망함에 며칠을 앓아야 했습니다.

또 하나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사제총’ 사건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던 ‘수원권선4지구 철거민 투쟁’입니다. 1998년부터 최종 진압당한 1999년 6월까지 당시 학생신분이었던 저는 철거민들이 점거하고 있던 건물을 학생들과 수시로 출입하면서 철거민들의 투쟁에 함께 했었습니다. 당시 철거민들은 권선4지구 택지개발로 인해 오갈 데 없는 세입자들이었고, 이주대책, 주거권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수년째 해오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분들 역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득달같이 달려드는 철거용역반원들과의 거친 싸움, 삶의 희망마저 하루아침에 빼앗겨버린, 그 누구도 당신들의 삶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용역반원과 경찰의 침탈에 대비해 순번을 정해 불침번을 서고 있는 중, 그 야심한 새벽에 철거민 한 분이 저를 보시며 ‘이렇게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이제 곧 위험해질 것 같으니 학생들은 빠져도 된다’는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조직폭력배보다 더한 용역직원들이 무서웠고, 언제라도 연행해갈 듯이 달려드는 경찰들이 두려웠습니다. 결국 공권력이 투입되기 며칠 전 저와 학생들은 결국 농성장에서 나왔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에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으신 분들. 며칠뒤 그 분들은 결국 ‘사제총’ 사건을 빌미로 ‘범죄집단’ 취급받으며 그렇게 끌려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학교를 졸업하고 수원의 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던 때, 단체 행사장에서 어떤 분이 조용히 다가와 따뜻한 오뎅 한 그릇과 음료수 한 박스를 제 옆에 놓고 슬며시 사라지는 게 보였습니다. 제가 다가가 누구시냐고 묻는 순간, 아픈 기억의 한 자락 속에 숨겨둔 그 분이었습니다. 제게 ‘고맙다’고 연신 머리를 숙이셨던 권선4지구 철거민.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냐고 묻는 말에 근처에서 노점을 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를 보시고,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기 미안했는지 당신이 팔고 있던 오뎅 한그릇과 음료수를 놓고 가려고 했답니다. 해드릴 말이 없었습니다. 저와 그 분은 짧막한 인사만 나누고 그렇게 다시 헤어졌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요? 수년전의 철거지역 현장과 2009년 철거지역 현장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철거민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한결같습니다. ‘불법’ ‘과격’ ‘생떼’ ‘보상금’…. 철거민들에게 붙이는 딱지는 이런 것들입니다. ‘용산참사 배후세력 전철연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조선일보의 사설도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건설업체와 땅가진 사람들 배불리는 개발사업은 끝간데 없이 계속되고, 그 속에 살고 있던 가난한 서민들은 오늘도 쫒겨나야 합니다.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구청과 시청에 찾아가 ‘하소연’이라도 해볼라치면 ‘생떼’ 부리지 말라며 쫓겨나기 일쑤입니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손에 쥔 ‘화염병’은 마지막 남은 ‘희망’이자 세상을 향한 ‘절규’입니다. 그 ‘희망’과 ‘절규’를 듣지는 못할망정 ‘테러진압’ 하듯 그렇게 진압하는 현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사망의 원인이 철거민들의 화염병이라며, 농성시작 3시간만에 경찰특공대를 배치하고 투입하는 참으로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법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이고 이것이 ‘법치주의’라고 하면 이런 민주주의, 이런 법치주의는 버려야 합니다. 저들이 말하는 위선에 찬 ‘경제살리기’에 철거민들은 ‘희생양’일 뿐입니다. 그런 경제 이제는 필요없습니다. 저에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철거민’은 ‘기억속 저편의 과거’가 아니라 가슴아픈 ‘현실’로 또 다시 다가옵니다.

다시한번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시] 삶과 죽음 - 윤동주

사진 : 박김형준 (다산인권센터) - 1월 21일 42차 수원촛불에서...


삶과 죽음 - 윤동주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나는 이것만은 알았다.
이 노래의 끝을 맛본 이들은
자기만 알고,
다음 노래의 맛을 알려 주지 아니하였다)

하늘 복판에 아로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냐.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 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위인들!

2009년 1월 20일 화요일

2009/1/20

솔재는 이제 7살. 솔찬이는 이제 4살이다.
솔찬이의 떼쓰기 내공이 점점 무르익고 있는 요즘
손찌검 및 물건 집어던지기, 울기 등의 기술을 능수능란히 구사 중이다.
특히 형아를 향한 폭행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근데 형아는 한대도 못때린다...
동생이 때리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경우
안아프면 실실 웃고, 한대 정통으로 맞으면 울어버린다.
요즘 이런  솔재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솔재 : 사마귀랑 번개맨이랑 싸우면 누가이겨...
나 : 싸우는거 한번도 못봐서 모르겠는데...
솔재 : 그럼 슈퍼맨이랑 스파이더맨이랑 번개맨이랑 태권브이랑 싸우면 누가이겨?
나 : 아빠 생각엔 태권브이가 로보트라 태권브이가 이길 것 같어.
솔재 : 아냐...스파이더맨이 이겨...거미줄이 *(&^%^@ㅉ(*ㄸ&(&*^%^*&*&(# (말도안되는 이유....^^)
나 : 아...그럴수도 있겠구나...
솔재 : 그럼 아빠랑 경찰차랑 싸우면 누가 이겨?
나 : 응?
솔재 : 옛날에 그랬잖아. 아빠 손다쳤을 때 경찰차랑 싸웠다고...
나 : 응.... ^^; 아빠가 져...


2009년 1월 19일 월요일

벼랑끝에 몰린 사람들

용산철거민들이 신용산역 근처 건물을 점거하고 옥상등에서 경찰과 철거반원들과 대치중이라고 한다.

[속보] 용산철거민들, 화염병 등 투척하며 철거반과 대치

'화염병'과 '새총'등으로 경찰에 맞서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지는 미지수다.
철거민들...'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언제나 '몇푼의 보상금 더 받아 쥘려고' 목숨거는 사람들로 비춰지곤 한다.
최소한 내가 겪었던 철거민들은 그런 사람은 없었다.
미쳤다고 돈 몇푼때문에 '화염병'을 들고 '짱돌'을 들고 경찰과 맞짱 뜨겠는가.

몇년전에 오산 수청동인가 철거싸움이 한창일때
철거민들은 마지막으로 망루를 쌓고 경찰과 대치중인 그 때
그 현장에서 나는 마지막을 지켜봤다.

헬기와 물대포, 중무장한 경찰특공대가 망루에 진입해
영화에서 나오는 테러진압 처럼 철거민들은 그렇게 진압당했다.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다만 그렇게 현장을 지켜봤을 뿐이다.
'철거민 생존권 보장하라'는 하염없이 초라한 피켓하나 들고
그렇게 현장을 지켜봤다.

밑바닥으로 내팽개쳐진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화염병'
그들의 손에 쥐고 있는 이 화염병은 세상을 향한 분노이고
처절한 삶에 대한 한가닥 희망이다.
아마도 진압이 완료될 즈음.
경찰과 조중동을 포함한 쓰레기 같은 언론들은 또 개거품 물거다.
'화염병'이 어쩌구...'신나'가 어쩌구...'새총' 어쩌구...

최소한 그들의 삶에 대해 이해라도 하지 못할 망정.
그들의 손에 쥐어진 '화염병'과 '폭력'에만 눈이 가는 참으로 비인간적인.

하지만 결국...거리에 꽃다발이 나부낄 그 날이 사실이 멀지 않았음을
이들도 아마...아마도 잘 알 것이다. 그래서 더 물어 뜯거나, 아니면 일부러 무시할 것이다. 아마도...





2009년 1월 15일 목요일

[사진] 1월 14일 41차 수원촛불 사진 후기


41차 수원촛불은 매번 하던 수원역 광장이 아니라 보시다 시피
수원역 다음 정거장인 세류역에서 진행했습니다.
날이 추워 손을 호호 불어가며 발을 동동굴러가며 했지만
촛불찻집에서 나눠주는 따뜻한 차한잔과 촛불로 추위를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아참, 세류역에서 수원촛불을 한 이유가 있어요.
보시다시피 수원에는 '수원비행장' 공식 명칭은 '제10전투비행단'이 있지요.
'수원시민과 함께하는 열린공군'이라는 모토에 걸맞지 않는 짓을 요즘 계속 하고 있답니다.
소음피해는 둘째치고, 비행장 확장공사를 한다고 수십년동안 농사짓던 농민분들을 내쫒았거든요.
그래서 '수원비행장 확장반대'를 위한 촛불을 농민분들과 함께 든 것입니다.






수십년 동안 농사짓던 이 분은 하루아침에 농토에서 쫒겨나셨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설치된 수원비행장은 그 때에도 농민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았고,
해방후에도 헐값에 농민들은 강제수용 당해야 했습니다.
이제와서 국방부 소유의 땅이라며 비행장 확장한다고 철조망을 쳐버렸습니다.

더보기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이렇게 촛불을 함께 들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분들 다시 농사짓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원촛불에 등장한 'Free Palestine'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벌어지는 '학살'
하루하루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민중들.
이스라엘은 지금 즉시 '학살을 중단하라'는 촛불의 목소리들.






우리도 '촛불산책'이란거 해봤습니다. ^^
세류역 바로 옆에 있는 수원비행장 정문까지 살포시....^^
근데...
거리가 넘 짧았다는....


자, 마지막 사진으로...
저 치마 아니다...뭐라고 했더라...
두루마기...아..이것도 아니다...
촛불여인들의 기념촬영으로 마무리~~~~

촛불시작한 후에 젤루 추운 하루였지만
그 만큼 보람있는 촛불이지 않았을까요?

자, 수원촛불은 다음주에도 계속됩니다~~~쭈욱~~~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국방부와 제10전투비행단은 일방적인 군 기지 확장 계획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기를 촉구합니다.
2. 교육·훈련시설을 설치하기 위한 군 기지 확장 계획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부득이 설치가 필요하다면 비행장 내 유휴부지를 활용해야 합니다.
3. 현재 설치된 철조망을 하루빨리 제거하여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농민들이 희망을 갖고 올해 농사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카페 <여기는 수원시민광>으로 오시면 수원촛불님들과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2009년 1월 12일 월요일

수원지역 블로그 메타사이트 실험 개시



아직 도메인을 구입하지 않았지만 수원지역 메타사이트를 구상하면서 실험삼아 만들어 보았습니다.
http://anothersuwon.cafe24.com

수원지역의 시민사회단체 블로그와 활동가들의 블로그를 우선 네트워크 시키는 것 하나와
진보적인 지역의 블로거들이 있다면 개인 블로그도 함께 엮어 나갈 생각입니다.
아직까지는 지역단체들의 블로그 활용도가 바닥 수준이지만
경기민언련 차원으로 블로그 교육도 하고, 만들고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채워나가야 겠습니다.
메타사이트 구축과 관련해서는 http://itcanus.net에서 많은 정보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수원지역 블로그 네트워크 활동에 관심있는 분들이 계시면 함께 준비하고 토론하고 공부하면서
만들어 갔음 하는데...혹시 누가 계실랑가요?



2009년 1월 8일 목요일

나도 미네르바 못지 않아요...제발 잡아가주세요...

검찰관계자 여러분~~~!!

떡검 떡검 이런 소리 들으면 검찰에서 일하시는 분들 자존심 상하지요?
물론 헌법정신에 투철하신 많은 검찰 관계자들은
몇몇 정신나간 선수들 때문에 통으로 욕을 먹고 계신겁니다.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주경복 전 후보 수사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욕 드럽게 먹고 있지요?
삼성수사는??? 아..그건 특검이었나? ㅋㅋㅋ

참...일하기 싫으시겠다...
법치를 바로세우기 보다 이명박 뒷치닥거리 하고 있을려니...
아..이거 명예훼손인가요? 뭐 그럼 할 수 없죠...잡아가시든가...

아참...저 그리고 여러분들 보시기 허위사실 유포 딥다 많이 했어요.
제 블로그 보시면 많아요.
광우병 이야기 무쟈게 많이 하고 다녔거든요.

경제위기도 미네르바님 처럼 내공은 없지만
이명박 대통령 믿다가는 쪽빡 찹니다....하고  다녔어요...
몇몇 친구들은 주식도 다 팔아치웠어요...

글구 지금두요...촛불집회 하고다녀요...
우리는 이걸 촛불문화제라고 하는데 이것도 허위사실 유포죠?

글구요...기자회견을 빙자한 집회도 엄청하거든요.
경기도당 한나라당앞에서 하는 기자회견은 다 쫒아다녔어요.

검찰 나으리...
이런 사람들 딥다 많아요.
미네르바 한 사람 잡아서 해결되지 않거든요...

다 아시면서... 떡검 아찌들...으흐흐





미네르바가 체포당했다?

속보가 떴다.

檢,‘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 체포

뭐하는 짓이냐...
'허위사실 유포죄'란다...

닝기미...
정부에서 허위사실 유포한게 어디 한두놈이냐.
잡을 사람을 잡아야지...

사람들 또 열받겠네....

[사진] 촛불은 공권력으로도 추위로도 꺼지지 않습니다.

1월 7일. 마흔번째 수원촛불이 진행됐습니다.
지난해 추워지면 '촛불문화제 어떻게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힘도 들었고, 매주 촛불에 오시는 분들도 줄어들면 어떻게 하나...걱정이 많았습니다.
근데...저만 그런 걱정했나 봅니다. ^^ 여전히 촛불은 살아있습니다.

소위 MB악법이 한나라당의 의도대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야당의 국회점거도 한 몫 했겠지만
반 이상의 국민들이 MB악법을 반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언론노조 경인일보지부 박상일 위원장입니다. ^^
이번 국회에서 최대의 쟁점이었던 신문법, 방송법 등 정부와 한나라당의 '언론장악'에 맞서
언론노조에서 총파업을 힘차게 진행했지요.
경기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경인일보 노동조합이 함께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경기민언련에서 <MB악법 관련 경기지역 일간지 긴급모니터>를 발표했습니다.

링크 : 경기일보, 경기지역의 조중동인가??

박위원장님은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조중동과 재벌들은 어떻해서든 방송을 장악하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합니다.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맞지요. 여당과 야당의 합의는 자칫 '휴전선언'이지요.
2월, 3월 더 큰 투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ㅋㅋ...근데 말씀 끝나고 노래한곡 부탁드렸지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멋지게 불러주셨습니다.


수원촛불의 다크호스...촛불총각님...
암것두 모르고 있던 시절...이명박을 만나...
자기가 이렇게 변했다고 하십니다.
집회, 데모 이런거 하나도 모르고 있었는데...^^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를 멋지게 불러주셨습니다.


마이크만 잡으면 누구보다도 힘차게, 당당하게, 그리고 길~~~게 말씀해주시는 봉태규우님...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대해 비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 침묵으로 동조하는 미국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남의 집 불구경하면 안되겠죠?
이번 주말 팔레스타인 민중들과 연대하는 집회가 있답니다.

링크 : 이스라엘 학살 중단 집회





시민과 함께하는 <촛불찻집>.
매주 빠지지 않고, 추위에 언 몸을 따뜻한 커피와 유자차, 코코아로 따뜻히 데워주시는 정말정말 아름다우신 분들.
항상 고맙고, 사랑스러운 분들... 수원촛불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그렇습니다.



수워지역 노래모임 <붉>의 공연
아...<붉>이 무슨 뜻인지 물어본다는게...다음엔 꼭 물어봐야지요.
오랜만에 <민중의 노래> 힘차게 불렀습니다.
촛불 시민들 춥다고 한곡만 부르고 가신다고 했는데...
당근....'한번더!'가 나와서....



불후의 명곡 <바위처럼>을 신나게 부르고...촛불님들...춤추고...^^

이렇게 40차 수원촛불은 마무리 됐습니다.
다음주 41차 수원촛불은 계속됩니다~~~~ 쭉~~~~

2009년은 촛불이 승리하는 해로!
경쟁과 착취가 아닌 협동과 자치의 시대로!
폭력과 차별이 아닌 소통과 평등의 시대로!

2009년 1월 5일 월요일

2009/1/5 촛불이 민주주의다!

벌써 작년이네요.
5월 6일.
수원에서 처음 촛불을 들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무작정 양초, 종이컵 모아서, 마이크, 앰프 이곳저곳에서 빌리고
발언하실분도 정해지지 않고...
무작정 그렇게 수원역에 갔던게 5월 6일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촛불이 벌써 이번주 마흔번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날이 추워져 사람이 줄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명박씨가 도와줘서 그런지 사람이 줄기는 커녕 늘어가고 잇습니다. ^^

매주 나와서 따뜻한 차 한잔씩 나눠주시는 분들
매주 나와서 전단지 한장한장 곱게 접어 시민들께 나눠주는 분들
정갈한 한복을 입고 매주 조용히 촛불을 들고 계시는 할아버지.
앰프며 스피커며 솔찬히 많은 촛불물품을 날라주시는 분들
수고한다며 박카스 한박스 조용히 놓고 가시는 분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촛불 좀 그만하라며 소리지르고 가시는 아저씨

촛불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거나
우리는 똑같은 시민이고, 똑같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거 그거 말처럼 쉬운일은 아닙니다.

오늘도 어느 철탑에 올라 농성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매서운 칼바람에서도 국회앞을 지키며 사그러드는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고
또 저 멀리 팔레스타인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씩 목숨을 잃어야 하고
참 안타까운 현실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팍팍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가야지요.
함께 갑니다. 우린 그렇게 민주주의와 빼앗길 수 없는 인간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우린 이렇게 갑니다. 묵묵히...




수원시민들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사무실로 몰려간 이유!

한나라당 수원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가 시작됐다.
1월 5일 오전 11시.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 사무실 앞에서 <수원시민대책회의> 주최로 MB악법 강행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사진제공 : 박김형준(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80개가 넘는 법안들 중 저들이 이야기하는 '민생법안'은 없고, 순 재벌특혜, 민주주의 말살 법안들만 가득한 상황에서 해당지역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 직접적인 항의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특히 수원지역의 박종희, 정미경 의원은 은행법, 신문법, 방송법 등 최악의 악법이라 불리울 만한 법안들을 대표발의하거나 공동발의하는 반민주주적인 폭거의 주인공들이다.


산업은행 민영화를 포함하는 <은행법>을 대표 발의한 박종희 의원과 소위 떼법, 신문법, 방송법 개정안을 낸 정미경 의원

MB악법 중 수원지역 국회의원 발의 법안


펼쳐두기..


사진제공 : 박김형준(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국민들의 가난한 삶을 외면한 채 일부 재벌과 부자들을 위한 법안을 강행처리하려는 한나라당은 국회 파행의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들"이라고 비판하면서 "한나라당은 하나 하나의 법안이 국민 모두의 총의를 모아 처리해야할 만큼 엄중한 법안들임에도 불구하고, 80여개의 법안들을 국회의장 직권으로 상정해, 2008년 연내에 강행처리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여, 야당의원들과 수많은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제공 : 박김형준(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기자회견 후 <MB악법반대 항의서한>을 박종희 의원실 책임자에게 전달하면서 "더 이상 국민들을 기만하지 말고, 모든 악법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수원시민대책회의>는 오는 8일, 임시국회 마지막날까지 한나라당경기도당 앞 1인시위를 시작으로 수원지역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 대한 직접적인 항의행동을 조직하기로 했다.

기자회견문


2009년 1월 4일 일요일

[파업지지][사진] 경찰력으로 역사를 거스를 수 없다!

어제(1/3) 국회내 농성장에 경위들이 투입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국회앞 촛불에 다녀왔습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300여명 정도 되는 시민들이 있더군요.
제가 도착한 그 시각 쯤 경찰의 경고방송이 시작됐습니다.

"여러분들은 불법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해산하십쇼!"

촛불들은 KBS와 MBC까지 '촛불산책'을 하기로 하고
삼삼오오 촛불을 들고 이동했습니다.


KBS앞에 도착하니 경찰들도 따라와서 이렇게 막아섭니다.
그 앞의 시민들은 KBS와 경찰들에게 야유를 보냅니다. "우~~~"
보신각 타종행사 조작방송에 대해 사과하라고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mbc에 도착했습니다.
kbs앞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사랑해요 mbc" 구호가 많이 나옵니다. ^^;



mbc 앞 촛불을 마무리하고 다시 국회로 돌아간 시민들 중 연행자가 발생했고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항의하던 시민들 또다시 연행되는 사건도 있었더군요.

경찰력으로 민주주의 역사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2009년 1월 2일 금요일

[파업지지][사진] KBS에서는 안나온 보신각 촛불

예상대로 였습니다.
보신각 현장에서 비춰주는 생중계 화면에는 우리가 없습니다.
KBS 카메라는 연일 사회자와 가수들, 대학로 행사만 스케치 하더군요.
아마도 서울지방경찰청의 공문이 효과를 발휘했나 봅니다.
31일 행사 전에 서울지방경찰청은 공문을 보내 촛불시위는 보도하지 말아달라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관련기사
청와대가 언론을 가지고 노니까, 이젠 경찰까지 가지고 놉니다.
언론인들 어떻해 보면 참 딱합니다.....

수원에서 촛불을 간단히 끝내고 종각역에 도착한 시간이 8시 30분.
이미 종각역안에는 촛불시민들이 차량통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시각, 여기저기 경찰과의 마찰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었고
차량통제시간인 10시가 다가오자 이미 보신각 인근 인도에는 사람들로 넘쳐났습니다.
10시 30분경인가 본격적인 차량통제가 되자마자...
ㅋㅋㅋ


보신각 타종행사장 바로 앞까지 수많은 촛불시민들과 깃발들이 자리잡았습니다.
"독재타도! 이명박 퇴진!"
이때부터 시작된 구호와 노래는 행사 끝날때까지...
사람들 정말 신나게 외칩니다. ^^
정말 오랜만이죠. ^^



수원촛불을 든 사람들 깃발.
간만에 띄운 깃발. 정말 반갑습니다.
근데..
여름에 비맞고 안말렸더니...
곰팡이가...ㅠㅠ
저거 빨아도 안빠진다는 데...


전대협 깃발 옆에서...ㅎㅎ


이렇게 수많은 깃발을 펄럭이고
수많은 시민들이 '이명박 퇴진'을 외쳐도
KBS 생중계에는 하나도 못나갔지만...
뭐 저 쉐히들 하는 짓이 다 그렇지요 뭐...
욕먹을 짓 골라서 하기...ㅎㅎ


노란풍선의 소망
"한나라당은 해체하라!"



일제고사 문제로 해직된 선생님을 돌려달라는 노란색 풍선.
경찰은 이것도 집회용품이라고 보는 족족 뺏고
나눠주는 시민 연행해 가고.
풍선도 이젠 폭력시위 물품인가 봅니다.
저 들에겐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건
아마 그런 딱지 죄다 부치고도 남습니다.



악법강행은 곧 이명박 퇴진과 같다.
국민이 이긴다.
지당하신 말씀...^^


추위와 경찰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참 많은 사람들이 보신각 주변에 모였습니다.



그래도 재벌은 건재하고, 정권과 한나라당은
이런 재벌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려고 하고 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거리에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구요.


타종은 이미 끝났습니다.
원래 33번인가 친다고 알았는데,
이 날은 사람들 구호소리에 몇번을 친건지 구분도 안가고
33번 치는데 시간 좀 걸릴텐데 이날은 얼마나 빨리 쳤길래
금방 끝나더군요.



폭죽에 소원등에...
저 소원등 살짝 보니 2mb out 인가가 써있더군요.
아마 저기 모인 시민들 대부분이
그런 소원을 빌지 않았을 까요? ^^



2008년의 끝을 촛불로 2009년의 시작도 촛불로 했습니다. ^^

여기는 수원시민광장 http://cafe.daum.net/swnomadc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