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1일 목요일

친구



자주 만나면 만날수록 건강에 도움이 안되는 친구
하지만 자꾸 만나고 싶은 친구
그래서 오늘도 만난 친구...

2010년 2월 9일 화요일

스킨

이제 블로그 스킨 가지고 그만 장난 쳐야 겠다.
쨌든 방문자 숫자에 연연해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아예 카운터 없다...좋다...
근데 텍큐닷컴 스킨 가지고 장난치는 거...시간만 잡아 먹는다.
시간잡아 먹는 괴물...쾍....

세월


내가 엄마 자궁속에서 나와서 제일 처음 나를 잡아 주셨던 분.
외할머니...

2010년 2월 7일 일요일

외할머니


외할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이번 설 연휴에 찾아뵙지 못할 것 같아 미리 찾아뵜습니다. 근 몇년간 찾아뵙지 못하다가 이제야 마음먹고 영주로 내려갔다 왔습니다. 올해로 여든여섯 되셨습니다. 몇년전만해도 정정하셨는데, 이제는 아픈 곳이 많아 지셨는지 몸이 영 성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저에게 외할머니가 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를 받아주신 분입니다. 삼형제 중에 유일하게 저만 외할머니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1972년 11월 14일 새벽에 그렇게 엄마는 저를 낳고, 외할머니는 받았습니다. 그 때, 추운데 엄청 고생했다고, 아직도 기억을 하고 계십니다.

"언제 죽을 동 모르는데, 잘 왔다. 잘 왔다" 괜히 눈 시울 붉히시는 우리 외할머니.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합니다. 또 찾아 뵐께요....^^


2010년 2월 6일 토요일

[사진&시] 나의 슬픔에게



나의 슬픔에게 - 이태수

나의 슬픔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불을 켜서 오래 꺼지지 않도록
유리벽 안에 아슬하게 매달아 주고 싶다.
나의 슬픔은 언제나
늪에서 허우적이는 한 마리 벌레이기 때문에,
캄캄한 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거나
아득하게 흔들리는 희망이기 때문에.

빈 가슴으로 떠돌며
부질없이 주먹도 쥐어 보지만
손끝에 흐트러지는 바람소리,
바람소리로 흐르는 오늘도
돌아서서 오는 길엔 그토록
섭섭하던 달빛, 별빛.

띄엄띄엄 밤하늘 아래 고개 조아리는
나의 슬픔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불을 켜서 희미한 기억 속의 창을 열며
하나의 촛불로 타오르고 싶다.
제 몸마저 남김없이 태우는
그 불빛으로
나는 나의 슬픔에게
환한 꿈을 끼얹어 주고 싶다.

새벽 두시에..생각나는 건...





침이 꼴까닥...
얼릉 잠이나 자자...

2010년 2월 5일 금요일

G20회의 11월 11일, 12일 서울에서 열린다.

아..가카도 계십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sc=30000001&cm=헤드라인&year=2010&no=64650&selFlag=&relatedcode=&wonNo=&sID=505

그래서 수능시험일까지 조정한다고 합니다.

 특히 11월 11일이 수학능력시험 예정일이어서 청와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은 수능시험일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가카께서 의기양양하게 G20회담을 유치하면서 내뱉으셨던 말씀. 아래 말씀은 모두다 2009년 9월 30일 기자회견에서 하신 말쌈들...

 “지난 100여 년 간 국력이 약해 우리의 운명을 세계 열강의 손에 내맡겨야 하는 설움을 겪었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을 맞았다”

 지당하신 말씀. 여기에 덧붙혀 한마디 더 하셨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서민들이 허리를 펴고, 일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아 오지 않겠는가”

가카의 핵심은 여기에 있겠지요. 수십년 전부터 들어오던 아주 아주 익숙한 '허리띠 졸라매자' 맞습니다요. 허리띠 졸라매고 세계 각국의 대빵들이 모여서 와인잔, 막걸리잔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얼씨구 절씨구 하시는 모냥을 우리는 걍 '참고 견디면' 허리펴고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젠장.

그나저나 11월 11일. 12일 목요일. 금요일입니다.
자, 달력 펴시고 빨간 글씨로 좀 써주세요. 그 날은 쥐떼 잡는 날이라고...

나는...살고 싶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부산본부 지도위원.

살아오신 세월과 그 세월을 감칠맛나는 말로 풀어내시는 분. 당신의 이야기를 묶어 '소금꽃나무'라는 책으로 엮었고, 저는 그 책을 사서 2007년 6월 7일. 싸인을 받았고.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간단히 올린적이 있습니다.

 

[링크]김진숙 지도위원 강연 _ 2007. 6. 7

 

작은 소년같은 외모지만 넘치는 에너지로 사람들을 혹하게 하시는 분. 열사들의 장례식장에 언제나 기나긴 시를 들고, 추모사를 하시며 오열하시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김진숙. 그 분이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한진중공업 해고자이기도 하지만 그 뼈아픈 세월속에서 다시 정리해고의 폭풍이 몰아치는 한진중공업 정문에서 단식을 하고 계십니다.

 

지율스님 단식때도 그랬지만, 사실 곡기를 끊는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았다는 뜻입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가 있기에 그리 목숨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윤과 효율을 따져가며 352명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세상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품고 생각은 한낱 꿈일 뿐일까...곰곰히 생각하게 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사장에게 쓴 편지를 그대로 옮겨놓습니다.

 

나는..살고 싶습니다.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님께)

 

짧은 배움으로도 회장님의 안부부터 여쭙는 게 예의겠으나 다급한 사람의 안부를 먼저
전하는 것도 큰 결례는 아닐 듯 싶어 제 소식을 먼저 전합니다.
보고를 받으셨겠지만 저는 회장님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단식을 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 진숙이라는 사람입니다.
며칠 전 몸무게를 재보니 43kg입디다. 10kg이 넘게 사라졌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몸의 변화를 물으시기에 심장을 손아귀 힘 센 사람이 꽉 움켜쥐었다가 놓는 것 같다했더니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가장 위험한 징존데요” 하시더군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새벽에 혹은 오밤중에 제 심장을 움켜쥐는 악력 센 손이 꼭 회장님의
손인 것만 같습니다.
저는 그 손아귀 힘을 뿌리칠 기력을 나날이 잃어갑니다.
두 번 째, 소변에서 거품이 부글거린다 했더니 단백뇨라는군요.
몸이 지방을 다 쓰고 근육도 다 쓰고 이제 마지막으로 몸에 남은 단백질을 쓰면서
버티는 거라고.
단백질마저 다 쓰고 나면 20일이 될 무렵부터는 이제 장기에 손을 댈 거라고.
내 몸이 살기 위해 장기를 갉아먹기 시작한다는군요.
오늘이 23일쨉니다.

14일째 되는 날은 못 일어났습니다.
몸을 일으킬 기력이 없으면 의식도 못 일어나야 옳으련만 의식은 새벽 두시에 일어나 몸을깨워 화장실 가고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자고 보채는데 딴청을 부리는 몸은 참 서럽습니다.
3일을 그렇게 누워만 있었습니다.
몸에선 살비듬이 징역 징벌방의 석회처럼 허옇게 떨어집니다.
그렇게 내 몸을 떠나가는 살비듬마저 아깝습니다.
그저께 나온 혈액검사 결과는 백혈구 수치가 2300까지 떨어졌다는군요.
5000이 정상인데. 2000이하로 떨어지면 골수에 이상이 생길뿐더러 내 몸이 어떠한
감염에도 대응할 능력이 사라진답니다.
이런 얘기들이 회장님껜 기쁜 소식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왜 이러고 있냐구요.
제 목숨뿐만이 아니라 수천 명의 목숨줄을 움켜쥐고 있는 회장님의 그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입니다.
회장님께서도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겠지만 이미 한진중공업에선 2003년 구조조정을
막아내겠다고 싸우던 두 명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고 나서야 노조는 20년이 넘은 숙원사업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해고됐던 두 명 동료의 복직과 수십 명 해고자들의 복직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만 제외됐구요.
대한조선공사를 한진이 인수하면서 이어졌던 세 명 열사들에 대한 추모공원이 지어지고,
노동조합 건물이 5층 복지관으로 번듯하게 지어져 노사가 화기애애하게 테이프를 자르고,
30억을 들여 식당이 새로 지어지고, 임금이 올라가고, 성과금이 두둑해지고..
수십 년을 싸우고 수십 명이 구속되고 해고되어도 단 한 가지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던 광명천지였죠.
저는 참 신비로웠습니다.
이렇게 해줘도 회사가 안 망하는구나.
해고자가 떼거리로 복직되고 임금이 이렇게나 오르고 노조사무실이 현장으로 옮겨져도
회사가 안 망하는 거였구나.
근데 왜 두 사람이나 죽여야 했을까.
두 사람이나 죽고 나서야 그런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게 뼈가 저리긴 했지만
전 그게 회장님 나름의 속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6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일러를 켜지 않는 걸로 비겁한 속죄를 하고 있듯이.
누리면서도 불안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갈까.
이 불안한 평화의 댓가로 우린 뭘 지불하게 될까.
이 위태로운 평화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위태롭고 불안한 평화는 6년이었습니다.
그리고 9년 만에 성향이 다른 노조집행부가 들어섰습니다.
제가 작은 텐트를 치고 단식에 들어간 날이 하필이면 부산에선 6년만의 추위가
엄습했다고 호들갑을 떨던 날이었습니다.
회사에선 전기를 끊었습니다.
발전기라도 돌려달라고 노조에 요구했지만 그 무섭도록 추운 하루가 다 가도록 발전기는
오지 않았고 결국 다른 데서 발전기를 가져다 돌렸는데 새벽에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아침까지 벌벌 떨며 기다리다 노조에 전화를 했는데 “진숙이한테 기름 갖다 주지 마!”
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집행부.
오십 넘은 나이에 단식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짧게 적은 유인물마저 복사를
거부했던 집행부.
그 집행부가 들어선 지 1주일 만에 구조조정 통보를 하셨지요.
투쟁보다는 교섭에 치중했던 집행부 엿 먹으라는듯이 결국 교섭 중 정리해고 신고서를
노동부에 접수하셨구요.
정리해고를 밀어붙이는 회장님에게 만일 어떤 의도가 있는 거라면 그 의도를 무리없이
관철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 진 거죠.
352명을 신고하셨다구요.
물론 명단작성을 완료하셨을테구요.
혹시 그 352명의 하나하나 얼굴을 떠올려 보셨나요.
그의 불안한 눈빛, 굳은 살 박힌 두꺼운 손, 검은 기름때가 골골이 박힌 주름살들, 담뱃진에 찌든 누런 이빨, 어눌한 말, 한 벌을 장만하면 몇 년씩 입어대는 입성들.
그리고 가장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사는 그의 아내. 아이들 게다가 연로하신 부모님들.
352명을 짜르면 적어도 천명 이상의 삶이 무너지겠지요.
그는 잘해야 하청노동자가 될 것이고 그의 아내는 한 달 5~60만원의 알바 자리에
인격을 짓밟히며 온갖 수모를 겪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학원이 끊길 것이고 그 아이들은
어김없이 비정규직이 될 것이고..
작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이 30,887,724원 입디다.
연봉 3천만 원짜리 철밥통들.
352명의 연봉을 합치니 10,872,478,848원 이더군요.
회장님이 굳이 짜르겠다는 352명의 목숨값을 다 합쳐봐야 회장님이 작년에 한진에서
챙겨 간 주식배당금 120억에도 못 미치더란 얘깁니다.
이 계산을 하면서 울었고 이 부분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회장님에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크게 표도 안 나는 그 돈 때문에 천명이 넘는
저들은 얼마나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밤들을 뜬 눈으로 뒤척이고 있을까요.
그의 가족들은 또한 얼마나 두려운 채로 살얼음판 같은 시간들을 디디며 떨고 있을까요.
아직도 새벽이면 가장 먼저 눈앞에 떠오르는 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뽀오얀 콩국입니다.
단식을 하면 원래 가장 많이 먹던 음식이 생각나는 법인데 근래 콩국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생각하다가..
열여덟 살 겨울. 122번 화진여객 시내버스 안내양 시절.
새벽 4시 15분이면 김해에서 첫 차가 출발합니다.
첫차 손님과 막차 손님은 대부분 같습니다.
연장 가방을 짊어진 아저씨들, 큰 고무다라이를 인 아지매들.
그들은 대개 내리는 곳도 같습니다.
아저씨들은 구포 인력시장에, 아지매들은 자갈치시장에.
문짝이 덜덜거리는 새벽 첫차 안에서 빈속으로 김해벌판을 가로지르면 속은 견딜 수 없이 쓰리고 온몸이 경운기처럼 벌벌 떨립니다.
그땐 버스 안에 스팀도 없었습니다.
충무동 천일예식장이 회차 지점입니다.
거기 콩국을 파는 구루마가 있었습니다.
발이 곱아서 걸음을 게처럼 옆으로 걸으면서도 콩국 구루마까지 용케 뛰어갑니다.
기사님 꺼 까지 두 그릇을 사서 곱은 손에 받아들고 질질 흘리면서 게처럼 다시 뛰어 와
입 천장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먹었습니다.
비로소 온 몸에 피가 돌고 속이 화아 해지던 온기. 저절로 나오던 한 마디.
“아! 살 거 같다!”
다른 사람들은 단식 3~4일이 지나면 먹고 싶은 게 없어진다는 데 저는 위장마저도
평범치를 못한 모양입니다.

굶는 자와 먹는 자의 시간의 길이는 다릅니다.
하루가 100시간도 넘는 거 같습니다. 특히 새벽은 대공분실의 시간보다 기나깁니다.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언제까지 할 거냐고, 단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고.
그때마다 저는 단 한명의 조합원이라도 지키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애가 터집니다.
많은 분들이 건강이 무너지고 난 이후를 걱정하십니다.
그러나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게 아니라는 게 확실한 상황인데 정리해고가 일상화 된
현장에서 우리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짤려 나간다면 전 살아도 산목숨이 아닙니다.
마음 같아선 회장님께 게임이라도 제안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하루를 버티면 한 명씩 명단에서 제외되는 게임.
백혈구가 0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면 352명 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03년도처럼 끝난 다음에 울고불고 하지 않으려구요.
두 명이나 잃고 보일러도 못 켜고 그렇게 못나빠지게 살지 않으려구요.
솥발산에도 못 가고 추모식에도 못 가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구요.
그때 85호 크레인 밑을 끝까지 지켰던 젊은 친구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서
눈도 못 마추치는..
더 이상 그렇게 안 살려구요.
화장실 출입도 막으니 거울도 못 보던 상황이라 사진이라도 찍어서 제 몸을
보고 싶었습니다.
11일 째 되는 날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 몸은 이미 영혼을 담을 능력을 상실해가는구나.
저 몸을 그대로 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많이 울겠구나.
2003년의 나처럼 앉아서도 울고 서서도 울고 누워서도 울겠구나.
어떻게든 저 몸에 콩국 한 그릇 먹여 화색이 돌게 해야겠구나.
피땀도 흘려보고 피눈물도 흘려 본 저 몸뚱아리 딴 건 몰라도 콩국이라도 먹여
어떻게든 살려내야겠구나.
저는 아직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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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시간 전에 단식을 풀고 병원으로 이송되셨다는 군요. 건강회복 잘 하시길 빌어봅니다.

2010년 2월 4일 목요일

97차 수원촛불, 서명운동의 달인들...^^


2월 3일 수요일. 97차 촛불이 수원역 지하(?)에서 진행됐습니다. 20여명의 촛불님들이 함께 해주셨어요. 직장인, 활동가, 회사 사장님(?), 철거민, 고등학생까지..참으로 다양한 분들이 나와주셨습니다. ^^



사탕때문에 서명을 하시는 건 아닙니다. 원래 촛불다방을 해야 하는데, 지하에서 괜히 불지폈다가는 태클이 들어올 수 있기에 간단히 사탕으로 대체. 사탕처럼 달콤한 수원촛불....^^

받고 있는 서명은 KBS수신료 인상 반대, 4대강 삽질 중단, 의료민영화 반대...아..또 한가지가 있었던거 같았는데요..기억이 안나요...ㅠㅠ

이번에 나눠드린 유인물은 학교무상급식과 최저임금, 의료민영화 관련한 유인물이었어요.
함께 해주신 분들이 열성적으로 배포하셔서 금방 동이 나버렸답니다.


맞죠...한나라당 간판 내리고, MB는 사표내야죠...사표수리 금방 될꺼예요...^^


수원역에서 촛불을 하면 장애인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분도 판넬을 유심히 살펴보시고, 직접 서명운동에도 함께 해주셨어요. 의료보험 민영화 등 공적 영역의 민영화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장애인과 노약자, 서민들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도레미파솔라시....아..도가 빠졌네요... ^^

2008년 5월 6일부터 시작된 수원촛불. 2009년 매주 수요일 한번도 거르지 않고 들었던 촛불. 다시 2010년. 2월 24일은 100번째 수원촛불을 하는 날입니다. 매주 수요일 들었던 촛불. 100번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앞으로 100번의 촛불을 그려나가는 시간을 갖습니다.

촛불은 끝내 어둠을 이길 것입니다.

텍큐닷컴...도대체 어쩌시려고...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진 않지만...오늘(2월 4일) 오전부터 텍큐닷컴이 안열렸습니다.
지금은 멀쩡히 열리긴 하지만 어떤 공지도 아직 없습니다.
도대체 어쩌시려구 그러십니까.
구글이 문제입니까.
텍큐닷컴 팀이 문제입니까.
둘다 문제인가요.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흔적이라도.. 좀 보여주시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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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공지가 뜨긴 떳군요...


서비스 장애 발생 안내를 보면서..드는 단 한가지 생각.
구글 텍스트큐브팀은 아직 살아있구나...ㅠㅠ

2010년 2월 3일 수요일

금연 5일째


20년가까이 피워오던 담배를 5일째 피우지 않고 있습니다. 친구따라 강남가는 거지만 어쨌건 담배를 안피우니...손이 떨립니다. ^^

어제는 팔달구 보건소 금연클리닉에 다녀왔습니다. 금연을 도와줄 상담사 세분이 계시더군요. 제게 금연의 필요성과 금연 후 금단현상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시더군요. 꼭 담배 피워보셨던 분처럼 정곡을 팍팍 찌르더군요...^^

어쨌든 보건소 금연클리닉에서는 4주동안은 일주일에 한번 보건소로 나와서 상담 및 체크를 하고 그 이후 부터는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관리를 해주신답니다. 6개월까지 끊으면 선물(?)도 준다니...그거 한번 꼭 받아볼렵니다.


금연클리닉에 가시면 금연패치, 껌, 사탕, 간단한 운동기구, 손지압기, 달력...참 많이도 주십니다. 저는 패치나 니코틴이 함유된 껌은 부러 받질 않았습니다. 아직까지는 니코틴 부족으로 죽을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말이죠. 금연 생각하시는 분들. 동네 보건소 금연클리닉에 꼭 한번 가보셔요.

깨끗한 물 마시기.
커피는 되도록 안마시고.
술은 가급적 조금만.

근데. 옆에서 피우는 담배 냄새가 아직도 좋은 건...ㅠㅠ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용산학살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고 정대영님은 용산참사의 현장인 망루에 함께 계셨던 분입니다. 철거민의 삶을 알고 난 뒤 누구보다도 다른 지역 철거민들의 투쟁에 함께 해오셨습니다. 수원 신동 주민 중 한분이셨던 고 한대성 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 한대성님은 망루에서 불에 타 돌아가셨습니다.

고 정대영님은 그 망루에서 살아남은 죄로 법정에 섰습니다.

작년 7월 살던 집을 철거 당했습니다.

최근에는 3월말까지 보상협의를 끝내고 신동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1월 23일. 수원 신동에서 야간 규찰을 마치고 철대위 사무실에 몸을 눕힙니다.

그리고...1월 24일...싸느란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그리고...1월 26일...한줌의 재로...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용산학살은 이렇게 진행중입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2010년 1월 25일 월요일

철거민 또 한명 사망....


작년 7월에 수원시 신동에 갔었습니다. 용산참사 희생자 중 한분이 바로 신동에 사시던 주민이었고, 수원시의 재개발로 쫒겨나게 될 처지에 계신분들이 사시던 그곳.

[2009. 7]수원신동 재개발 예정지역 스케치


어제 신동에 사시는 주민 한분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경찰이 추정하기로는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답니다. 돌아가신 고 정대연님은 작년 1월 20일 용산참사 망루투쟁에 함께 하다 경찰에 연행되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 왔다고 합니다. 21일에도 용산참사 불구속 재판을 받았고, 이날 재판을 받고 돌아와 매우 힘들어 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용산참사가 일어난지 꼭 1년하고도 닷새만에 또 한분의 철거민이 죽음으로 내쫒긴 것입니다. 직접사인이 무엇이 되었건, 검찰조사와 재판, 그리고 철거압력에 시달리다 고 정대연님은 돌아가신 겁니다. 사회적 타살...
이 비참한 악순환은 언제까지 되풀이되어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펼쳐두기..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학생인권 조례는 교육의 기본이다.


지난 1월 19일 경기도 교육청에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공청회>가 있어 다녀왔습니다. 조례 초안이 발표된 후 언론과 보수단체들의 집중 포화를 맞았던 그 문제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식적인 첫 공청회 였습니다.

이번 공청회는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듯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그것도 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자리를 뜬 사람이 별로 없었던 점으로 봐서 그 관심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번 공청회에서 발표자들간의 쟁점은 '보편적 권리로서의 인권'이냐, 아니면 청소년, 특히 학생들은 '미성숙한 존재로 인권은 유보되거나 규제할 수 있다'는 논란이었습니다. 문제는 학생인권조례에 비판적 입장으로 이야기 하신 분들은 야간자율학습, 두발, 복장, 체벌 등 20세기 형 교육철학으로 21세기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뉴라이트 학부모회 강대신 대표의 말을 들어 보시죠.







반면 '미성숙한 존재' '훈육이 필요한' 학생의 발표도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땐 어느 발표자 못지않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훌륭하게 정리해서 발표했습니다. 이런 학생들을 자꾸 '미성숙'이니 '훈육'이니 하면서 관리하고 억압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20세기 형 교육철학이 아닐까 싶네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조직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군대, 감옥입니다. 하지만 군대에서도 요즘엔 구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옥은 수형자들의 인권을 위해 법무부에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러나..학교는...아직도 20세기 시스템에서 한치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교실의 책걸상만 새것으로 바뀌면 뭐합니까. 교과서를 시디로 나눠준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초등학생 마저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게 만드는 이 살인적인 경쟁교육 시스템은 어른들이 만들었습니다. 그 훌륭한 20세기 교육시스템으로 훈육(!)되어진 우리 어른들이 말입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가장 기본이 되는 일입니다. 이 마저도 우리 사회가 거부한다면 더 이상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이사

우리집 전세로 내놓은지 하루만에 계약 완료...
우리가 이사갈 집은 아직 구하지도 못했는데...
이걸 어쩌나....
이걸 어쩌나...

2010년 1월 18일 월요일

용산참사 1주기...


작년. 1월 20일 아침. 저는 병원에 있었습니다. 아내가 내시경을 받고 있을 때, 병원에 걸린 커다른 LCD TV에서 나오는 뉴스. 새벽에 벌어진 그 참상을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아마, 용산에서 망루가 올라갔다는 소식은 전날 인터넷 매체에서 접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특공대 투입. 화재. 사망. 아비규환...

잊혀지지 않을 역사, 잊어서는 안되는 기억, 하지만 더 이상 되풀이 되지 말아야할 시간들.

이를 위해서라도 용산참사의 진실과 희생사 분들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합니다.

수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촛불집회를 하면서 용산참사 희생자분들의 영정과 분향소를 1년내내 차렸습니다. 1월 20일 95차 수원촛불은 용산참사 1주기 추모문화제로 치뤄집니다.

같은 시간 서울에서도 추모 문화제가 진행됩니다.
수원이든 서울이든 함께 하실 수 있는 곳에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2010년 1월 15일 금요일

94차 수원촛불 사진후기


94차 수원촛불의 내 맘대로 포토제닉상 수상작품입니다...ㅋㅋ
각자의 이상형 앞에서 피켓팅을...
유이님 이상형은 메달님을 닮은 것 같고..
랄라님은 저렇게 되고 싶다는 소망같아 보이고...
풍경님은...아...눈높이를 낮추셔야...뭔가 될 것 같은데...ㅎㅎ



살인적인 추위를 피해 지하도로 내려왔지만..지하도 역시 많이 추웠습니다.
그래도 서명인파는 줄을 섰습니다.
무상급식 촉구서명,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서명 등을 진행했습니다.
호짱님..죄송합니다...^^;


지하도라 임시로 판넬을 벽에 기대서 전시했는데...워낙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라
효과는 좋습니다.


"이명박 2년은 **이다"는 여전히 시민들의 관심이 계속됩니다...ㅋㅋ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피켓팅을 하고 있는 비올님...왠일인지..곁으로 사람들이 안오더군요...
술냄새를 풍기셨나...ㅋㅋ


연대님은 여전히 조중동 불매 피켓을...
하얀 손님은 피켓 두개씩이나...수고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철도 공안 여러분께서 친히 방문해주셨습니다.
사진상으로는 다들 회피하고 있는 듯 합니다만...ㅋㅋ
연대님께서 똑부러지는 말솜씨로 되돌려 보냈습니다...만쉐이~~~!!

이 날은 어리버리님 문상을 가는 관계로 수원촛불 최초로 뒷풀이가 생략됐습니다.
어리버리님이 복귀하시면 찐하게 한잔 해야지요.

영하 15도의 날씨속에서도 꿋꿋하게 지켜지고 있는 수원촛불.
다음주(1/20) 95차 수원촛불은 용산참사 1주기를 맞아 추모문화제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용산을 기억하고 앞으로 살인적인 재개발 정책에 맞선 저항의 다짐을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사진] 남과 여


요즘 수원촛불은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 때문에 수원역 지하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매번 나오는 20여명의 수원촛불님들은 지하철 출퇴근 인파속에서 조용히 피켓을 들고 서 있습니다.
기가막힌(?) 대비는 아니지만, 사람들 눈길 끌기에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가끔 철도공안님들이 오셔서 '이러시면 안되죠' 하고 한마디씩 건네긴 하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공안분들도 귀찮으신가 봅니다. ^^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졸리다...

따뜻한 온돌방에
푹신한 담요덮고
쌔근쌔근
잠 자고 싶다.

난 이 세상에서 잠이 제일 좋다.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지금 제일 먹고 싶은거...




벌교에서 먹었던 꼬막과 비빔밥...으..배고프다...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용산참사 철거민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지난 토요일에 있었습니다. 355일 동안 차가운 냉동고에 갖혀 진실을 커녕 국가폭력의 잔인함을 살아있는 이들에게 보여주었던 그 분들을 위로하듯 하늘도 장례행렬을 따라 차가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제는 용산참사 범국민대책회의 집행위원장 두 분과 전철연 남경남 의장이 수개월에 걸친 수배생활을 마치고, 명동성당에서 나와 경찰에 자진출두를 했습니다. 공동집행위원장인 박래군. 이 분은 2년전 함께 일했던 분이고, 전철연 남경남 의장은 대학다닐때 만났던 분이었습니다. 두 분다 시챗말로 외골수입니다. 인권운동에, 철거민 운동에 평생을 투자한, 옆도 뒤도 안돌아보고 그저 묵묵히 소외된 사람들, 국가폭력에 희생자들과 함께한 사람들 입니다. 수배자 중 한분인 이종회님은 "우리의 죄는 가진 자를 위한 재개발에 저항했고, 장례를 지내게 해달라고 외쳤고, 그런 그들과 연대를 했다는 것"이라며 "이런 게 죄가 되는 게 우리나라"라고 한탄했습니다.

보수언론과 극우단체들은 철거민 희생자들을 이용한 국가전복, 체체전복 세력으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지만,  어찌보면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국가폭력의 희생자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권력과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를 체제를 전복시킬 것 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들만의 국가, 그들만의 체제를 말입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역시 검찰 소환을 받았습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징계를 거부했다는 표면적 이유가 있습니다. 요즘 김상곤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 문제 때문에 여기저기 물어뜯기고 있습니다. 물론 이전에는 무상급식때문에 곤욕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정치적 입장을 표명했다는 이유, 시국선언에 이름 하나 올렸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해야 하는 것 자체가 전혀 공정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이를 거부했다는 것으로 검찰 소환까지 받는 김상곤 교육감은 난처할 것입니다. 짧은 임기에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교육현실에 학부모의 입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또 한명, 신해철씨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소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4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하여, 또한 적법한 국제 절차에 따라 로켓(굳이 ICBM이라고 하진 않겠다)의 발사에 성공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는 글에 대해 보수단체가 국보법 위반혐의로 고발한 사건이었습니다.
국가보안을 위한 법이 국가보안법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이미 역사박물관에서나 봐야 할 구시대적 법률이지만, 버젓이...대한민국 국민들의 생각과 자유를 옭아메고 있습니다. 신해철, 그 법에 따르면 처벌 받아 마땅하겠지요. 찬양고무죄. 빌어먹을 세상입니다.

저희 아들녀석들이 매주 보는 개그콘서트 보다 못한 저질 코메디가 무슨 아침드라마도 아니고 매일 펼쳐지니 흥미진진합니다. 막장드라마 보면서 '저게 무슨 드라마냐'고 비난할게 아닙니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습니다. 그저 사람된 도리를 다하면 죄가 되는 세상이니, 우리는 사람답게, 사람처럼 살 생각 같지 말아야 겠습니다.

저들의 국가, 저들의 체제, 저들의 행복은 결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이제, 학부모...헐....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에 입학했던 때가, 아마 80년인가 될꺼다. 기억의 조각은 운동장에서 가슴에 손수건을 단 코흘리게 친구가 줄을 서고 있는 게 전부다. 그리고 담임선생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졸업 앨범을 한번 들춰보면 기억이 날 성 싶다.

 

솔재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천당밑에 분당이라는 그 분당을 벗어나려고 나름 노력한 결과 수원으로 이사를 오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막상 시간이 흐르고 이제 한달뒤면 솔재를 입학시켜야 하는데, 아직 이사갈 집도 정해지지 않았고, 집도 내놓지 않고 있다 보니...이제야 슬슬 오금이 저려 온다.

 

엊그제, 눈발이 흩날리는 시간에 수원으로 집을 보러 왔다. 보러오긴 왔는데 볼 집이 없단다. 부동산에서는 마땅한 집이 나오면 연락을 주겠다며 내 전화번호를 가져갔다. 우선 분당 집부터 내놓고 오란다. 그게 순서란다. 뭐, 내가 집을 내놓고 사고, 해봤어야 알지...

 

남창초등학교. 솔재를 보내려고 하는 그 학교를 솔재와 같이 와봤다. 굳게 닫힌 정문에서 창살넘어 보이는 운동장과 학교 건물만 봤지만, 그래도 마음이 설렌다. 아직 입학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내가 학교를 가는 것도 아닌데, 괜히 설렌다.

 

내심 학생수가 적은 학교에 보내야, 학교를 변화시키는데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 결정한 일이긴 하지만 현실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으리라는 것. 학부모들이 다 나 같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 선생님들도 마찬가지 라는 것. 교장은 더할나위 없이 현실적인 인간일 터. 아무리 내가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시험걱정, 선생님한테 혼날 걱정으로 하루하루 살고 있는 솔재. 시험보다, 경쟁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는 것을 초등학교에서 배울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공교육시스템에서 이런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초등학교. 멀리서 찾기 보다 내 아이가 다니는 집앞의 초등학교가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만들고 싶다.

 

[동영상] 2009년 수원촛불 영상기록
























2009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수원역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2008년 5월 6일 시작된 촛불이 수원에서는 아직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많고 적음을 떠나
한 뜻으로 오랜 시간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린 든든합니다.

2010년. 수원촛불을 아마도
계속 될 것입니다.

2010년 1월 7일 목요일

만원의 행복?

어제밤, 택시를 기다리던 그곳에서 아는(?) 형을 만났습니다.
술이 좀 들어가셨습니다.
형! 하고 불렀더니... 어? 하고 놀랍니다.

그 때부터 내 손을 꼭 잡고 이야기 합니다.
"미안하다, **야"

형과 헤어지기 전 10분 동안 이 형이 한말은 "미안하다, **야"
그만좀 하시라고 해도 무조건 미안하답니다.

다른 이유 없습니다.
매주 수요일 하고 있는 수원촛불에 못나와서 미안하답니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지면서 그 형은 악수를 하면서 건너갔습니다.
악수를 했던 제 손엔 만원짜리 한장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뭐냐 이건...

택시를 타고 집에 오면서 이 돈을 어쩔까...하다..
용산참사 장례비에 포태기로 했습니다.
그 형이름으로 해야 겠습니다.

아마 담에 보면 형은 기억도 못할 것 같지만...ㅎㅎ

2010년 1월 6일 수요일

[사진] 학생인권이 좌파면, UN도 좌파냐??

오늘 아침. 수원의 기온이 영하 18도였다.
차가운 날씨 처럼, 꽁꽁 얼어붙은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인권을 반영하듯
경기도교육청 앞에서는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원안 통과 촉구 기자회견>이 있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발표 된 지난 12월.
조중동을 비롯한 각종 언론과 매스컴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연일 색깔론으로 물어뜯었다.


체벌금지, 두발자유 등의 대단히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인권마저도 좌파니, 빨갱이니..덧씌우는 일부 어른들의 사고방식에는 청소년, 학생들은 아직 인간이 덜된 그런 동물인가 보다.



내년이면 울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를 입학한다. 대안학교는 경제력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했다.


어젯밤 첫째 녀석과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이런말을 한다.
"아빠, 학교들어가면 시험봐?"
"응, 가끔 봐"
"100점 맞아야 하지? 100점 맞았으면 좋겠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안한 녀석이 이런다. 집에서는 공부, 시험 이야기는 거의 안했는데, 알게 모르게 이 녀석도 부담을 갖고 있다는 게 마음이 쓰인다.

"솔재야, 100점이든 50점이든 점수가 중요한게 아니야. 근데 자꾸 어른들이 그렇게 점수를 매기니까 아빠도 이상해"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학생인권이든 청소년, 아동인권이든. 인권이란 말만 꺼내면 사시나무 떨뜻 물어 뜯는 이 대한민국에서 아이와 함께 살아가다는 거,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거, 그거 쉬운일은 아니다. 이런 된장할....


[기자회견문]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2010년 1월 4일 월요일

눈은 이제 그만...^^

하루종일 내리던 눈이 이제야 끝이 보인다.
내려도 너무 많이 내렸다.













기록적인 폭설...

눈이다. 그것도 폭설이다.
오전에 아이들 차에 태우고 아파트 단지 나오는데 30분 걸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향하는 길.
그야말로 도로는 완전 마비. 버스는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어떻할까, 망설이다...내렸다.
집으로 철수.

뉴스를 보니 난리통도 이런 난리통이 없다.
살인적인 눈발이다.
눈은 더 내린단다. 날은 더 추워진단다.
기상청...또 욕 엄청 먹겠군...

서울 수도권에 사람들이 집중되다 보니
이런 재난에 속수무책이다.
재난대책을 세운다고 근본적으로 해결될일이 아니다.
뒤엉킨 차량. 출근전쟁. 재난...재난...

그래도, 아이들은 하얀 눈세상에
웃음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