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 착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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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교 지음 |
민음사 펴냄
2000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 이만교의 첫 창작집. 등단 이후 발표한 작품들 중에서 엄선해 엮었다. 농담하는 듯 발랄하고, 가볍고 슬프며, 진지하게도 웃음을 주는 우리 시대의 성과 사랑을 다룬 중편소설 2편과 단편소설 4편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나쁜 여자, 착한 남자'는 상처(喪妻)한 후 독신으로 지내는 한 중년남자가 회사 부하 여직원과 나누는 사랑과 욕망을 그려낸 작품이다.
『나쁜 여자 착한 남자』중「그녀, 번지점프 하러 가다」를 읽고...
“번지 점프 한번 할래?”
“나가버려!”
그 한마디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현관문 앞에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그러고는 작은방에 들어간 아내는 물건을 집어던지는지 우당탕 소리가 들렸고, 곧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차, 싶었다...기 보다는 드디어 ‘터졌구나’ 이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난 이 상황을 사실 예상했었다. 마음이 아프지만...
이야기인 즉슨 이렇다. 며칠전부터 아내는 퇴근 후에 집에 오면 늘 시무룩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아니면 평소보다 더 나에 대한 불만섞인 토로가 자주 있었다. 나의 늦은 귀가로 그런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고, 뭔가 불만이 있거나 뭔가 화가 단단히 난 그런 아내를 며칠 동안 보고 있는 내 심정도 가히 좋지는 않았다.
지난 토요일, 난 이런 상황을 좀 어찌 해보려고 말을 걸기도 하고,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돌아오는건 짜증 섞인 대답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결국, 그 날밤 나는 ‘바람 쐬러 나간다’는 한마디를 던지고 집을 나와 혼자 소주 한병을 비우고 노래방을 가고...나름대로 우울모드를 유지하면서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이 우울모드가 이어져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무실로 가겠다고 가방을 집어 들고 나오는 순간...사건이 터진 것이다. “누군 나갈 줄 몰라서 이러고 있냐”고...그 때부터 시작된 아내의 울음은 근 한시간을 지속되었다.
<그녀, 번지 점프를 하러 가다>의 주인공인 그녀는 ‘가족’ 혹은 ‘부부’라는 울타리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에서 잠시라도 탈출하려고 ‘번지점프’를 하러 간다. 결국 ‘번지점프’라는 일상j에서의 탈출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었고, 그곳에서 잠깐 만났던 ‘석이’라는 젊은 친구에게 ‘사랑’이라는 일탈을 상상하게 되지만 그것 역시 그녀만의 상상이라는 현실의 무력감에 이 한마디를 던진다. “이건, 강간당한 것보다 더 지독해!”
소설속의 주인공인 그녀. 그리고 내 현실속의 ‘아내’의 무력감은 사실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소설속 그녀의 남편이 현실에서의 내 모습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 도 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여성들의 무력감은 그 여성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그 역사가 깊고, 내면화 되어 있다고 하면 100% 틀린 말은 아니다.
아내로 엄마로 특히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직장에서 그것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이 땅의 여성들의 ‘무력감’은 남편의 그 잘난 ‘사랑’으로도 커버 될 수 있을지 평소 의문이었다.
남편들의 ‘사랑’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양말만 쿡 처박아놓은 채 발도 씻지 않고 텔레비전 앞에 드러누어서 밥줘’하는 남편이 요즘 얼마나 될까 라는 의구심보다, 아내들의 이 ‘무력감’은 남편들의 행위라기 보다 사실 가부장적인 결혼, 가족제도의 근본 원인이 있다는 내 평소의 소신(?)에 대한 ‘대안없음’이 내 자신의 ‘무력감’의 요체다.
우리집에서의 사건이 있던 날, 우울모드에서 급 화해모드로 전환되었다. 아내도 쌓였던 불만을 ‘울음’으로 터트리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한지 이런저런 고민을 그제서야 쏟아낸다.
그 날 근처 공원에 아내와 함께 나갔다.
그곳에 높다랗게 서있던 번지점프대. 평소 뛰어내리던 사람들을 구경하던 그곳에서 난 아내에게 말했다.
“번지점프 한번 해볼래?”
아쉽지만 아내는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눈치였다. 아쉽게도...